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오랜 역사와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충돌에 대하여 간략히 알아보자.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로, 이스라엘과의 갈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팔레스타인 국가의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 갈등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서, 종교적,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요소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하마스란?
이름 '하마스'는 아랍어 '하라카트 알무카와마 알이슬라미야(حَرَكَة اَلْمُقَاوَمَةِ الْإِسْلَامِيَّةِ, Ḥarakat al-Muqāwama al-ʔIslāmiyya)'의 두문자어로, 이는 '이슬람 저항 운동(Islamic Resistance Movement)'이라는 의미다. 더불어 아랍어 어휘 '하마스(حماس)'는 알라를 따르는 '헌신과 열정'을 뜻하기도 하며 내부에서는 '힘과 용기'로도 해석한다.
하마스의 창당과 무력행사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반항하는 대대적인 봉기(1차 인티파다)를 일으키자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떨어져 나와 1987년 12월 10일 아흐메드 야신(1936~2004)이 설립한 정치조직이며 이스라엘 정부가 1차 인티파타를 잔혹하게 진압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9년 이스라엘군을 공격해 2명의 이스라엘 병사를 암살하면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1991년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이 창설되고 이스라엘군에 많은 공격을 가했다. 1993년부터 민간인에 대한 자살 테러 공격을 서슴치 않는 등 수단이 급격히 과격해졌다.
1차 인티파다가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일부 과격주의자들을 빼면 "하마스는 폭력을 신봉하는, 진정한 팔레스타인의 정당도 아니다!"라는 반대 여론이 강했다.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규제를 강요하고 이 중 물담배 금지령은 전통 이슬람 율법에도 언급이 없는 부분이라 반감을 사기도 했으며 자살폭탄테러를 주도하는 집단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들의 테러는 이스라엘 국민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예루살렘 등지에서 폭탄 테러, 그것도 여자들까지 가담하는 자살 폭탄 테러로 그 과격성이 수많은 팔레스타인 저항조직들 중에서도 가장 심했는데 미성년자를 동원한 자살폭탄테러는 하도 비난을 받다 보니 2006년에는 하마스에서도 금지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200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 국민들에 대한 테러를 저지르는 하마스를 계속된 처벌 요구에도 벌하지 못하자 분노하여 웨스트뱅크를 공격해 팔레스타인 정부청사를 박살내고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대통령)의 외출을 제한했는데 아라파트는 촛불에 의존하면서 집무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강경책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사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주도해 온 파타에 등을 돌리고 과격파인 하마스를 지지하며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2004년에는 아흐메드 야신을 헬리콥터 공습으로 암살했다. 그러다 보니 인티파다가 해결이 안 되고 이스라엘의 진압도 한계에 달하자 2007년에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양보를 했고 하마스도 파타의 중재를 받아들여 일단은 물러섰다. 하마스는 2000년에 일어난 제2차 인티파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데다 위에서 언급한 과정 등을 거치면서 PLO가 급속히 약화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투쟁으로 정의, 이스라엘의 존속을 전제로 하고 있는 중동 평화 교섭은 물론 모든 정치적 협상에 반대한다. 또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타의 온건 노선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으며, 테러 등 무장투쟁을 중시한다. 특히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에 대한 무력 저항을 주장한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박멸을 위해 하마스 지도자들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가해 왔는데, 설립자 아메드 야신은 2004년 3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살해됐고 뒤이어 지도자로 선출된 압델 라지즈 란티시 역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하였다.
하마스는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총선에서 132석 가운데 73석을 차지, 40년 동안 집권해온 파타당을 누르고 집권당이 되었다. 그리고 2007년 가자지구에서 파타 정파를 몰아내고 이곳에 대한 독자적 통치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를 내세우며 가자지구에 대한 엄격한 봉쇄와 통제를 시작했는데, 우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생필품 등 물자 반입을 차단했다. 특히 가자지구를 에워싸는 분리장벽을 세우고 주민들의 통행을 극도로 제한, 가자지구는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무력충돌
최근 몇 년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무력충돌은 더욱 격화되었다. 특히 2021년 4월부터 2022년 8월까지의 사건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기간 동안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을 감행했고, 이스라엘은 공습으로 응징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무력충돌은 단순한 전투를 넘어서, 지역의 정치적 상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군사 작전을 강화했고, 하마스는 이를 통해지지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려 했다. 이러한 상황은 민간인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겼다.
2024년 10월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16일 작전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히야 신와르를 사살했다며 그의 최후 모습을 공개했다. 또한 2024년 10월 19일 이스라엘군은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때 신와르 그의 마누라와 가족을 이끌고 호화 터널로 피신하는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신와르의 마누라는 3만 2000달러(약 4400만원) 상당의 명품 에르메스 버킨백 가방을 들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마무리
하마스/팔레스타인/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양측 모두 대화보다는 무력 충돌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중재와 인도적 지원이 지속된다면,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나,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
참고자료
BBC, [보도자료] 정부, 연합뉴스, 한겨레, 네이버지식 사전, 두산백과, 나무위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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